2013년 11월 1일 금요일

W KOREA 2009-11 You know my name













신인배우 정윤호는 지금, 동방신기라는 둥지를 떠나 3글자 이름과 맨손만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You know my name

스튜디오에서 정윤호와 마주하기까지는 꽤 오랜 조율이 필요했다. 당일 밤 촬영 분량을 그날 저녁 6시까지 촬영해야 하는 가혹한 드라마 스케줄, 그사이 잡혀 있는 상하이 콘서트와 리허설 일정 때문이었다. 반나절의 스케줄을 빼서 더블유와의 촬영과 인터뷰에 할애하기 위해 정윤호는 그전 사흘 밤을 새워야 했다. 좋은 컨디션이나 여유로운 분위기 같은 건 지레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피곤한 아이돌 스타를 어떻게 달래고 얼러야 하나 걱정한 건 에디터의 기우였다. 잠깐씩의 쪽잠으로 며칠을 버텨왔다는 매니저의 귀띔과 눈앞에서 너무나 활기차게 돌아다니는 정윤호의 모습은 괴리가 컸다. 피곤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마인드컨트롤이 중요하다며 쓱쓱 긴 팔다리를 뻗어 기지개를 켜는 이 젊은이의 에너지는 현장을 순식간에 피로회복제 광고 촬영장으로 둔갑시켰다. 전날 불구덩이에 뛰어들고 언덕을 달리는 액션 장면을, 대역도 쓰지 않고 직접 찍었다는 스태프들의 증언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매니저 형이 저더러 철인3종 경기 나가도 되겠대요. 웬만한 스턴트는 직접 하거든요. 연기를 처음 시작하는 입장이라 그런지, 열정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동방신기 처음 들어왔을 때도 그 마음이었어요. 내가 동방신기니까, 이제 몸이 편하다고 생각하면 이 대본을 읽을 필요도 이 캐릭터를 이해할 필요도 없는 거잖아요. 차봉군이란 캐릭터는 절대 그래선 안 되는 캐릭터구요. 그래서 힘들고 많이 다치더라도 직접 대역 없이 연기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스턴트맨들도 잘하는 연기를 나라고 못할 게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시도했고, 그래야만 다음 장면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실제 유리창을 깨고 2층에서 뛰어내렸다. 운동장을 몇 바퀴씩 돌고 불 속에 뛰어들기도 했으며, 한강에 몇 번을 풍덩 빠졌다. <맨땅에 헤딩>이란 건 정윤호가 찍고 있는 드라마 제목인 동시에 그가 치르고 있는 수위 높은 액션 연기의 강도를 뜻하며, 무엇보다 이제 막 연기를 시작한 이 초보 배우의 마음가짐이기도 하다. 가수는 누구나 무대 위에서만큼은 주인공이다. 음악이 흐르는 3, 4분 동안만은 순위 프로그램의 몇번째에 그 노래가 가 있건 간에 스포트라이트는 온전히 그 가수의 것이 된다. 하물며 동방신기가 얼마만큼의 주목과 인기를 얻으면서 지금의 아이돌 천하를 태동시킨 팀인지는 대한민국이 아는 사실이다. 그 동방신기의 리더 유노윤호가, 반짝이는 무대의상과 근사한 춤 동작을 벗어놓고 허름한 운동복에 어눌한 몸짓을 입었다. 첫 드라마에서 멋지고 근사한 역할을 기대한 건 그 자신보다 팬들의 바람이었을 거다. "사람들은 내가 드라마에 출연한다고 했을 때 좋은 옷 입는 부잣집 아들 역할을 떠올렸을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연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대본을 볼 때는, 차봉군이 힘들게 살고 한이 많은 캐릭터라서 좋았어요. 비록 겉으로 비치는 모습은 '찌질이'에 가깝지만요." 폼나는 배역도 좋지만 그전에 자신이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연기할 엄두가 났을 것 같다는 것이, 스스로 백지 상태라고 말하는 이 초보 배우의 겸손하고 솔직한 변이다. 캐릭터를 설정하면서는 <슬램덩크>의 강백호나 이현세 작품의 까치 같은 만화 속 주인공을 많이 참고했다. 바보스럽지만 순수하고, 요령 없지만 마음만은 열정적이며 무엇보다 양심이 살아 있는 남자.
그에게 전혀 새로운 도전인 드라마가, 오히려 익숙한 기억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가진 것 하나 없이 K 리그에 도전하며 좌충우돌하는 차봉군의 모습이 힘들게 생활하던 자신의 연습생 시절과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짧은 시간에 에너지를 터뜨려야 하는 무대 퍼포먼스와, 편안하고 섬세하게 호흡을 조절해야 하는 연기는 전혀 다른 능력을 요구한다. 하지만 차봉군이라는 배역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에너지'란 점은 정윤호에게 퍽 다행스러운 일이다. 아직 대사의 발성이나 감정 표현의 디테일은 부족하지만 넓은 그라운드에서 공을 차고 뛰어다니는 그의 모습은 제법 리얼하다는 평을 받는다(워낙 운동을 좋아하고 승부욕도 강한 그는 극중에서 골대에 공을 맞춰야 하는 장면을 위해 50번씩 공을 찼는데, 이제는 능숙해져 네 번 만에 성공해낼 정도라고 자랑했다). 오래 춤으로 몸을 가다듬으며 기회를 다져온 자신의 경험과, 가능성을 폭발시킬 계기를 기다리며 훈련하는 봉군의 처지가 흡사한 데서 오는 이미지이고 할 것이다. <네 멋대로 해라> <나는 달린다> 등 박성수 감독의 전작들이 그러했듯이, 정윤호는 이 드라마를 부딪치고 깨지지만 희망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사는 20대의 이야기라 받아들인다. "축구 드라마라는 건 오해예요. 그보다는 한 젊은이의 휴먼 성장 드라마예요." 메이크업 룸의 밝은 조명을 정면으로 받는 정윤호의 얼굴에는 크고 작은 흉터들이 도드라진다. 흉터가 있는 쪽 얼굴을 찍어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사고 때문에 생긴 상처인데, 콤플렉스가 아니냐는 질문을 종종 받아요. 그래도 상처를 가리는 것보다 보여주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요. 힘들었지만 운 좋게 이겨낸 제 인생의 시간들을 표현해주는 증표라고 생각하거든요." 많이 다치고 자주 아프며 커왔다는 스물 셋의 청년은 그러나 더없이 밝고 긍정적이다. 예의 바르지만 규칙에 주눅 들지 않으며, 능숙하지만 때 묻지 않은 천진함이 보인다(드라마를 함께 찍는 대선배 윤여정에게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먼저 '애자씨'라고 부르며 다가갔다고 한다). 인터뷰는 추석 연휴 전날 이루어졌는데, 고향 대신 중국으로 가서 공연을 해야 하는 아쉬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얼마 전 친동생 생일이었는데 밤샘촬영 때문에 전화도 못했어요. 새벽에 '나쁜 오빠라서 미안하다, 다음에 적립해서 더 잘해줄게'라고 문자를 보냈더니 '오빠 힘든 거 다 안다'며 답이 오더라구요. 초등학교 6학년 이후로는 떨어져 살면서 간혹 보아온 동생이 벌써 대학교 3학년이 됐어요."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아버지라서 그분처럼 완벽하게 살고 싶고 쉴 때면 유치원 선생님인 친구를 만나러 가 아이들과 놀다 오기도 한다는 이야기에서도, 그에게서 풍겨 나오는 밝고 반듯한 천성의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중학교 때부터 8년째 갖고 있는 노트에 '남자로서 꼭 해야 할 일'을 적어오고 있다는 정윤호는 최근 '라스베이거스에서 공연 다섯 개 보고 오기'라는 항목을 업데이트했다. 노트의 다른 페이지에는 자신이 누군가의 도움으로 성장했듯이 다른 이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넓은 집에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여럿이 모여 함께 살기 등의 다른 할 일들이 적혀 있다고 했다(어떤 차를 타겠다거나 무슨 시계를 갖고 싶다는 내용은 이 공책에 없다). 그런가 하면 아는 형들과 특허 낼 기막힌 아이디어를 개발 중이라고 말하는 엉뚱한 왼손잡이기도 하다. 무대 위의 카리스마 넘치는 춤꾼이자 스타 유노윤호, 그리고 스스로 '시골촌놈'이라 말하는 때 묻지 않은 청년 정윤호가 그 안에서 공존하고 있었다. 네 글자 이름으로만 살아온 6년 동안의 시간을 보낸 지금, 그는 차봉군과 함께 성장하며 세 글자 이름을 다시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마지막 질문을 할 시간이 왔다. 늘 동방신기의 다섯 중 하나이다가, 지금 혼자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 그는 아주 짧게 답했다.

"외롭죠. 하지만 이런 과정들이 모두 성장통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난 성장해야 하고요."
에디터/황선우



에디터 후기 

작은 얼굴, 긴 팔과 다리, 주변의 빛을 모두 흡수한 듯한 자태를 지닌 셀레브리티와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는다는 건 어떻게 보면 스스로를 고문하는 일과도 같다. 그런데 에디터가 된 이래 첫 컨트리뷰티 사진을 찍게 되었다. 그건 동방신기의 유노윤호가 아닌 신인 배우 정윤호를 만나 꽤나 좋은 인상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 순간을 '간직'하고 싶다는 섣부른 욕망이 이내 후회스럽긴 했지만 모두 한바탕 크게 웃으며 촬영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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